호고탑은 호고선사의 중심건축으로서 건설년대는 이미 고증할수 없으며 대략 5대나 북송 시기에 세워졌으며, 명나라에 재건되었다. "호고"라는 이름은 사원이 성호(城濠)에 가깝고, 호하의 물이 구불구불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소동파(蘇東坡가 이곳에 와서 차를 마시고, 문장로(文長老)와 이곳에서 면담했다고 전해진다. 호고탑과 그 선사는 송나라, 원나라 때 명성을 얻었다. 원나라 4대 화가 중 한 명인 오진의 "가화팔경(嘉禾八景)"이 이 탑을 그림에 그렸다. 청나라의 대문호인 릉대전은 "호고"라는 시 한 편을 썼다. 시의 내용은 "맑고 깨끗한 물이 굽이쳐 흐르며, 그 물줄기는 끝없이 이어져 있다. 물이 깊고 그 깊이는 대단하며, 도시를 둘러싼 성호에 물결이 넘쳐 흐른다. 물 위에 흔들리는 탑의 그림자가 마치 깨진 유리처럼 반짝이다. 탑 꼭대기의 풍령이 소리를 내며 주변의 버드나무와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1906년에 호항철도의 건설로 인해 탑이 난후와 분리되면서 도로가 파괴되었고, 1970년대 초 탑이 오랫동안 보수되지 않아 무너졌다. 2002년, 난후 작원(勺園)의 옛터는 타지방으로 호고탑을 재건하고 새로 건설한 탑의 높이는 63.4미터이며 4면 7층 규모로 건축면적은 2200평방미터이다. 탑은 누각식이고 주위에 회랑이 있으며 건축은 여전히 송나라 풍격을 답습하고 있다. 각 모서리에는 풍령이 매달려 있어 미풍이 불면 28개의 풍령이 고요한 "딩동"소리를 낸다. 호고탑은 시내에서 현재 유일하게 올라갈 수 있는 보탑이며, 179급의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관광객들은 난후의 전모를 내려다볼수 있다. 호고탑과 함께 건설된 탑원은 2미터 높이의 대지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원 앞에는 거대한 석조 벽이 있고, 양옆으로는 높이 자란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호고탑 원문에 들어서면 동쪽은 팔각형 종루가 있고 커다란 동종에는 "호고선사"라는 네 글자와 "반야바라밀다심경"이 새겨져 있다. 서쪽에 대응하는 고루 안에는 큰 북이 하나 있고, 양쪽에는 회랑이 서로 통한다. 종루와 고루 사이에는 탑원의 주체 건물인 대웅보전이 위치하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 안의 관음 조각상은 매우 정교하다. 현재 호고탑 원내에는 오상사가 세워져, 이는 자싱 시민들이 오자서를 기념하고 단오명절을 경축하는 축제장소가 되었다. 전통적인 단오명절에 굴원을 기념하는 것과 달리 자싱이 단오를 지내는 것은 춘추시대의 오나라 명신 오자서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 당시 오자서는 자싱 일대에서 군사훈련을 하여 아름답고 감동적인 전설을 많이 남겼다고 전해진다. 옛날에 자싱의 용선 경기는 오상을 기념하는 전통 민속 활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