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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사

난후 북쪽에는 좁고 긴 작은 섬이 있는데 이름은 소영주이다. 현재 구곡교는 호숫가 공원과 맞닿아 있고 섬에는 꽃과 나무가 무성하다. 자싱 사람들은  이곳을 소난후 또는 소연우루라고 부른다. 섬의 북단에는 창성사라는 건물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한자는 창힐이 창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창힐은 "자성(字聖)"으로 추앙을 받았다. 청나라 광서 연간에 자싱 민간에는 "석자회"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창성사는 바로 그때 "석자회"가 은을 모아 지은 것이다. 사당에는 세 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창힐의 조각상이 있고, 당시 지역 문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경배하여 이"자성"을 기념한다. 당시 "석자회"는 자싱에서 누널리 알려져 있었다. 청나라 말기와 민국 시기에 그들은 많은 대바구니를 만들어 관서와 학교 단체에 나누어 사무실과 학교 교실에 걸었고, 공공장소에 걸리기도 했는데, 이런 대바구니는 "석자바구니"라고 불렀다. "석자바구니" 는 납작한 병처럼 높이가 약 1척 2, 3인치, 두께가 약 4, 5인치이고 통발과 같으며 위쪽은 그릇만한 구멍이고 아래쪽은 납작하고 밑바닥이며 좌우는 두각으로 약간 마름모꼴이다. 바구니 외벽에는 붓으로 "석자연년(惜字延年)"이라는 네 글자를 써서 사람들로 하여금 글자가 있는 종이를 함부로 버리지 말고 석자바구니 속에 버리도록 권장했다. 수거되지 않은 글자 종이가 많아지면 각 단체에서 집중하여 마대에 넣고 사람을 파견하여 천녕사에 보내 "화(化)"하게 한다. "화" 는 태운다는 뜻이지만 "태우다" 라고 할 수는 없다. 그때 천녕사 산문 앞 좌우 벽에 각각 종이를 태우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바로 사람이 종이를 태울 수 있는 곳이었다. 창힐을 기념하는 창성사나 창힐을 기념하는 유사한 건축물은 전국적으로 자싱이라는 곳만 있는 것 같기 때문에 창성사는 자싱 지방 문화 특색이 있다. 창성사는 항일전쟁 시기에 파괴되어 문과 창문이 다른 사람에게 헐리고 몇 개의 기둥만이 남아 깨진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석자회"도 항일전쟁 승리 이후 사라졌다. 신중국이 창건된 후 정부는 정원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창성사를 여러차례 보수하였다. 현재 창성사의 면모는 이미 일신되어 난후의 독특한 관광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난후 관광 지역 0573-8253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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